[즐거움의 가치사전 6] 여행: 빠른 이동, 소멸된 탐험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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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의 가치사전 6] 여행: 빠른 이동, 소멸된 탐험의 즐거움
  • 박민영_인문작가
  • 승인 2020.11.1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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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Chesterton, "여행의 목적은 외국 땅에 발을 딛는 것이 아니다. 드디어 자신의 나라를 외국 땅으로 밟는 것이다."
스페인 오비에도의 여행자를 기리는 동상, 아스 투르, 2007
스페인 오비에도의 여행자를 기리는 동상, 아스 투르, 2007

플리니우스는 인간은 여행을 즐거워하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은 본래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호기심은 변덕이 심하다. 호기심은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린다. 여행은 인간의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만약 먼 조상들이 여행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각 지역의 다양한 문명도 건설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하는 사람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하고 묻게 된다. 카뮈가 고귀하고 진지한 학문인 여행은 우리를 자신에게로 이끈다고 말한 것이나, 토마스 머튼이 지리상의 순례는 내적 여행을 상징적으로 행동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모두 여행이 가지는 성찰적 의미를 지적한 것이다.

여행은 미지의 것에 끌려가는 것이다. 여행은 습관화된 생활 형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평소에 보았던 것들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여행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공간임을 체험하고 깨닫는 과정임을 잘 보여준다.

증기선과 기차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처음으로 도착할 날짜와 시간을 알고 여행하게 되었다. 로마시대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사람들의 이동 속도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패배한 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부근에서 파리까지 돌아오는데 312시간 걸렸다. 시속 5마일이라는 그 속도는 기원 전 1세기에 로마와 갈리아 사이를 이동하는 데 걸렸던 시간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차는 같은 거리를 불과 48시간 만에 주파했다.

기차가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주로 역마차를 이용해 여행했다. 역마차를 이용한 여행은 안전하지 않은 도로, 바퀴와 바퀴축이 부러지는 사건, 강도의 습격, 부정확한 역마차의 연결, 계속 목 탄다고 칭얼대는 마부, 운송세, 교량과 성문 통행세, 관세, 누추한 숙소를 감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육체적 고통도 심했다. 사람들은 역마차를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고문 상자, 압축기, 반죽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철도는 위에서 말한 모든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철도는 안전하고, 빠르고, 값쌌다. 철도의 출현은 이전에 여행이 가졌던 이미지와 정서적 경험을 뒤엎는 충격이었다. 19세기 초기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철도는 민주주의, 국제주의, 평화와 진보의 상징으로 보였다. 페퀘르의 말은 그 이유를 납득하게 해준다. “동일한 힘으로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모두를 날라준다.”

상업적인 관광 여행은 순전히 철도의 산물이었다. 철도의 탄생으로 현대 관광여행의 역사와 상업적인 여행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은 쉽지 않았다. 상류층은 자기 신분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잠을 자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다. 그들은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혼자서, 고상하게 여행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행업은 대중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매우 혁신적이었다. 여행사가 발간한 여행표와 숙소, 음식에 대한 안내 책자는 교육받지 않은 사람과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외국 여행의 길을 열어주었다.

 

인도의 닐 기리 산악 열차, Enchant_me, 2006

빠른 이동 속도는 여행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여행하는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것이었다. 괴테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여행하지 않고 도착했다. 1843년 파리에서 루앙과 오를레앙으로 가는 노선이 개통되었을 때, 하이네는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그 변화의 의미를 간파했다. “철도를 통해서 공간은 살해당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시간 밖에 없다.”

빠른 속도는 사물들과의 교감을 소멸시켰다. 빅토르 위고는 1837822일자 편지에 이렇게 썼다. “길가에 핀 꽃들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 그저 색깔의 얼룩들일 뿐입니다.” 빠른 속도로 여행하게 되면서 사람들에게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반응이 나타났다. 사람들에게 이동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으로 변모했다. 그 전에는 이동하는 과정이 곧 여행이었다면, 지금은 그 과정이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시작될 진정한 여행의 지루한 준비시간으로 전락했다.

19세기 중반이 되면 여행 중의 독서가 문화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는데, 그것은 여행의 지루함을 덜려는 것도 있지만, 마주본 사람이나 옆 사람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지루함은 마차를 이용한 여행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1857년 발간된 한 프랑스 문헌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런데 열차에서는 얼마나 다른지……

현대의 여행이란 지금의 삶의 풍경, 문화, 자연을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나 TV에서 본 고대나 중세의 유적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와 과정을 상실한 여행자들은 그저 빠르게 이동할 뿐이다. 1940년대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한 윌프레드 세시저의 다음과 같은 말은 소비행위로 전락한 현대의 여행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일깨워준다. “나는 문명세계에서 얻을 수 없는 자유를 사막에서 발견했다. 소유로 인해 방해받지 않는 삶이 그곳에 있었다.”

근대 이전의 여행자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체험을 하고, 그 체험을 통해 세계를 탐험하고 교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여행자들에게 세계는 주어진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관광이라 부른다. 오랜 인류의 체험에서 볼 때, 그것을 진정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행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난관도 없을 때, 우리와 접촉하는 세계의 면적이 작아진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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