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즐거움의 가치사전2-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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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산책] 즐거움의 가치사전2-노동
  • 박민영
  • 승인 2020.09.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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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업과 전문화로 파괴된 일의 기쁨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 이른바 테일러리즘은 노동자의 작업동작을 쪼개고, 표준화해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으나, 제3세계에서는 노동력 착취의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 이른바 테일러리즘은 노동자의 작업동작을 쪼개고, 표준화해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으나, 제3세계에서는 노동력 착취의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인간 생활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노동과 휴식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혹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한다. 오늘날 노동은 성공 때문에 더욱 신성화되고, 성공은 다시 노동의 중요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노동은 무엇보다 그 자체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아무리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매일 노는 것은 고통이다. E. F. 슈마허의 말처럼 백만장자조차도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며, 음식 시중까지 받는다면 삶에 지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한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먹고 사는 일에 자유로운 왕은 일삼아전쟁을 하거나 하다못해 사냥이라도 해야 한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의 즐거움은 노동이 모든 인식의 출발점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한다. 노동은 인간에게 세계를 대상으로 다양한 영감과 창의적인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일하는 사람은 세계를 파악하는 즐거움,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누린다. 노동이 인간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노동이 세계와의 합일감을 주기 때문이다.

현대인들 중에는 노동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사람보다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동에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나 과거에는 노동의 즐거움이 흔한 것이었다. 신석기 시대의 노동은 공동체 전체가 더 넓은 생태계와 관계하는 과정이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육신의 노고를 달래주는 동료, 협동, 노래가 있었고, 그런 미적인 측면들이 소출 못지않게 소중히 여겨졌다. 고대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드는 일을 유희로 받아들였다. 부시맨족은 많아야 하루 평균 35시간을 노동에 바쳤다. 그들은 현대인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생존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점령한 후 인디오들을 잡아 강제노동을 시켰을 때, 그토록 오랜 시간을 일해본 적이 없는 그들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하고 쉽게 죽었다. 루이스 멈퍼드에 따르면, 현대의 노동행태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시계의 발명이었다. 시계가 발명되자, 사람들의 생각은 노동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이끌려졌다. 시계는 시간, 노동, 금전적 전략 달성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분업을 통해 하루 평균 핀 20개도 만들 수 없는 노동자가 4,800개의 핀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했다. 아담 스미스는 자유무역과 분업이 상류층보다 일반 국민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보고 국부론을 썼다. 그의 의도는 소박했지만, 그 결과는 오늘날 보다시피 참담했다.

1910년 미국의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 한 대 조립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2시간 28분이었다. 그러나 1914년 봄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서 자동차 한 대 조립하는 데 필요한 평균노동시간은 1시간 33분으로 줄었다. 포드사는 단시간 내에 숙련된, 한 가지 일만 하는노동자와 한 가지 일만 하는기계를 생산체제에 도입함으로써 대량으로 값싼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분업은 노동자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렸다. 노동자는 생산단위로서의 의미를 상실했고, 하는 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으로 전락함에 따라, 다른 노동자나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분업은 생산물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도 바꾸어놓았다. 노동자는 자신이 맡은 일만 하기 때문에 자기 일에 관해서는 전문가지만 다른 파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되었다.

하나의 부품,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어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크다. 노동을 하면 할수록 자기실현이 아니라, 자기 소외를 재생산하는 질곡을 낳는다. 에리히 프롬은 그것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어떤 사람은 심한 불안감과 고독감에 사로잡혀 계속 일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야망이나 돈에 대한 욕심에 쉬지 않고 일한다. 이런 경우 그들은 열정에 속박된 노예이고, 계속 쫒기는 그들의 활동은 사실상 수동적이다. 그들은 행위자가 아니라 수난자이다.”

노동은 윌리엄 모리스의 말처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하며, 지나치게 힘들거나 너무 마음 쓰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니체는 노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은 어떤 시대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로 현재도 노예와 자유인으로 나뉜다. 하루의 2/3을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은 자는 노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을 벌기 위해 일할 뿐이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는 휴식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돈이 가져다주는 만족에는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계속 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진다. 소로는 무원칙한 인생에서 이렇게 썼다. “단 하루라도 인류가 쉬는 것을 보았으면 영광이겠다. 그저 노동, 노동, 노동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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