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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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
  • 김경남 기자
  • 승인 2020.09.24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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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당나라 때 황제 생일에 신하들과 함께 나눠먹던 귀한 음식이 국수였다. 밀가루를 곱게 빻기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생일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환갑잔치, 결혼잔치, 돌잔치에서만 맛볼 수 있던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잔치국수다.

그런 잔치국수가 지금은 시장이나 장터 한 구석에서 젓가락으로 휘익저어 희고 긴 면을 후루룩삼키고, 따뜻한 국물은 마지막 한 모금까지 ‘호로록들이켜, 시린 속을 데워 허기진 요기를 채워주는 싼값에 한 끼를 때우는 음식이 됐다.

시인은 그런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국수를 먹고 싶다가 아닌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물리지 않고 매일 먹는 밥처럼 오늘이 어제 같은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저 그런 고만한 삶속에서도 누군가는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세상 그늘진 곳에서 고통과 슬픔,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세상이 잔칫날이라고 해서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배부르고 흥겨운 건 아니다.

모두가 흥겨워야 할 잔칫날, 누군가는 새벽부터 고단한 노동으로 잔치음식을 차려야 했고, 잔치에 초대받지 못해 소외받은 누군가는 잔칫집을 기웃거리며 허기진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세상 누군가의 배부름과 흥겨움은, 세상 누군가의 배고픔과 고단한 노동, 그리고 그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소외된 이들의 눈물로 만들어진다.

시인은 어릴 적, 새벽부터 잔칫집에 나가 일손을 거드는 엄마의 모습과 엄마가 만드는 군침 도는 기름진 음식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허기를 달랬던 기억이 있었는지 모른다.

잔치가 끝나가고 손님들이 줄어들면, 시인의 엄마는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시인을 조용히 불러 잔치국수 한 그릇 말아주고, 행여 누가 볼까 신문지에 싼 약과나 전 몇 개를 전해주며, 어여 먹고 얼른 집으로 가라고 야단 쳤을지 모른다.

시인은 세상이라는 큰 잔칫집에서 배부르고 흥겨워하는 이들 틈에 끼지 못하고, 상처받고, 핍박받고, 소외되어 어디선가 눈물 흘리는 이들을 보면서, 어릴 적 자신을 보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처럼, 얼굴에 눈물 자국이 말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는지 모른다. 어릴 적 동네 잔칫집에서 엄마가 얼른 가라며 야단치면서도 몰래 말아주던 그 국수가 그리워, 설운 눈물 감추며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 주는/ 그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는지 모른다.

나도 그런 국수가 먹고 싶다. '시름시름' 지병으로 하루하루 사그라지시는 팔순이 훌쩍 넘은 엄마를 보면서, 어릴 적 곱디 고왔던 엄마가 잔칫집에 기웃거리는 나를 불러 야단치면서도, 손에 약과 몇 개 집어주며, 얼른 먹고 가라며 말아주시던 불어터진 그 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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