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시인의 〈개 같은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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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의 〈개 같은 가을이〉
  • 김경남 기자
  • 승인 2020.09.17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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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있는 기억의 폐수(廢水)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시인은 가을이 개 같고, 매독 같다고 한다. 그런 가을이 쳐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을과 함께 죽음도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고 절망한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가을의 아름다움에 대해 노래한다. 그러나 시인은 가을에 대해 냉소적이다. 가을을 조롱하고 비웃는다. 심지어 죽음의 이미지를 덧씌워 절망하고 저주한다.

시인의 이야기처럼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을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그래서 수확하고 저장할게 있는 가진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풍요고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가을은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는 추위에 헐벗고 굶주리며, 버텨내야 하는 인고의 겨울을 이끌고 오는 절망의 계절이다.

가진 자들의 찬란한 황금 들판의 풍요가, 그들의 곳간으로 모두 옮겨지면, 대지는 헐벗고 메마른 흙먼지 날리는 쓸쓸한 풍경만이 남는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하는 세월의 강에서, 삶에 지친 이들이 피폐한 몸뚱이를 힘겹게 눕히는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봉놋방에서도 자다 깨 죽어가는 목소리로 바다를 묻는다.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시인의 이 물음은 강물은 바다로 가야하고, 바다가 돼야 한다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처절한 절망의 절규다.

가을에는 풍요와 아름다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가을 어딘가에 서는 삶에 지쳐 헐벗은 몸뚱이 하나 눕힐 곳을 찾아 말 오줌 냄새나는 봉놋방으로 찾아드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기억의 폐수만이 흐르는 이들의 삶에도 언젠가는 바다에 이를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존재한다.

바다는 모든 강물의 꿈이다. 강물은 섞어가는 폐수도 어우르고, 보듬고 감싸, 함께 손 마주잡고 흘러야만 더 큰 강물이 될 수 있고, 더 큰 강물만이 바다에 이를 수 있다.

이 가을 시인의 냉소처럼, 우리 삶이 말 오줌 냄새 풍기는 봉놋방에서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억의 폐수일지언정 흐르고 흘러 강과 어우르고 하나가 되어 바다에 이르기를, 주검 같은 꿈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바다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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