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즐거움의 가치사전1-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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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산책] 즐거움의 가치사전1-로맨스
  • 아산IN
  • 승인 2020.09.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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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합일에의 욕망
일본의 철학자 미키 키요시는 “사랑은 나에게 있는 것도, 상대방에게 있는 것도 아니며, 말하자면 그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고 그 행복은 무한히 계속될 것처럼 여겨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의 복잡성에서 벗어나 존재의 단순성, 존재의 근본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연인의 달콤한 한 마디의 말과 한 번의 아름다운 미소에 나의 행복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실제로 몸에 물리적 변화를 낳는다. 연인들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가슴 속에 있는 감정은 피 속으로 밀어닥치는 아드레날린의 분자로 변화된다. “사탕이나 사과라는 말에는 반응하지 않던 심장이 사랑이라는 말에 격동한다.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지고, 만사에 의욕이 샘솟으며, 표정이 밝아지고, 피곤을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은 물질로 변환되고 그 물질은 다시 우리를 구성한다.

연인들은 흔히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완전히사랑에 빠지는 경우란 없다.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리면 사랑은 신앙의 작용이며, 신앙을 갖지 못한 자는 사랑하지 못한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사랑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랑의 실체는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에 있다. 의식적 존재인 인간은 사랑도 의식적으로 한다. 겉보기에 사랑의 기쁨은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사랑의 기쁨은 로쉬후코의 말처럼 상대방이 일으키는 정열보다 자신이 스스로 느끼는 정열에서 나온다. 사랑의 샘물을 펌프질해서 길어올리는 것도 자신이고, 그 물에 젖는 것도 자신이라는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불꽃같은 사랑을 하다 죽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두 사람은 빨리 죽었기 때문에 불꽃같은 사랑을 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죽지 않고 그처럼 첨예한 정념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두 주인공의 불같은 사랑의 정열에 있다. 로미오는 줄리엣에 대한 정열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폭주기관차처럼 쏟아낸다. 그 정열이 두 사람에게 기쁨도 주고 죽음도 주었던 것이다. 로미오가 그처럼 끊임없이 사랑의 열정을 스스로 생산해내지 않았다면 말할 것도 없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초지일관 불같은 열정이다. 그 열정은 상대방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며, 그 열정이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열정에서 깨어난 후, 우리는 마이어A. Myrer의 다음과 같은 말에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 그 이상이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것은 미칠듯한 집착이었고 닻을 잃은 배와 같았다.”

만약 사람들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진실을 바라본다면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의 격정은 상대방의 어리석음, 비겁함, 천박함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상대방의 탐욕, 이기심, 공격욕구 등 가장 나쁜 단점 때문에 사랑이 더욱 격렬해진다. 상대방의 결점을 묻어주는 사람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 프랑스의 모럴리스트 아벨 보나르Abel Bonnard의 말을 빌리면 우정은 거짓말로 소멸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연애는 진실에 의해 소멸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거짓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호하다. 왜냐하면 환상에 빠지지 않고 사랑에 빠지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히 감정의 문제라고 하지만 감정은 환상과 구분되지 않는다. 파스칼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환상은 감정과 반대되지만 유사해서 사람들은 이 둘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감정을 환상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다른 사람은 자기의 환상을 감정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성이 기준을 자처하지만 이성은 어느 방향으로나 휘어진다. 그래서 기준이 없다.” 사랑하고자 하는 자는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반드시 자신을 속이거나 스스로 속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플라톤은 향연饗宴』에서 에로스는 선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그렇다고 추하고 악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양자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도 유아기적 퇴행의 길을 통해 합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고, 자아 성장의 길을 통해 합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며 쾌락만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할 기반은 없을 것이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것도 아니다. 사랑의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 대해 일본의 철학자 미키 키요시三木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나에게 있는 것도, 상대방에게 있는 것도 아니며, 말하자면 그 사이에 있다. 그 사이에 있다는 것은 두 사람 중 어느 쪽보다도, 또 그 관계보다도 근원적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두 사람이 사랑할 때 생긴 제3의 것, 즉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일로서 자각된다.” 사랑은 분명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위력은 두 사람을 초극한다.

현대인은 좀처럼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 힘들다. 샹포르의 표현을 빌리면 열에 여덟은 슬픔으로 죽어가고있다. 경쟁심과 적대감, 독점욕이 혼을 지배함에 따라 사랑을 통해 서로의 자아를 확장시키기는커녕 그것을 축소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상대방 외의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 오히려 커진다. 사랑은 자주 공서적 애착共捿的 愛着 혹은 확대된 이기주의가 된다. 대중문화산업은 왜곡된 사랑의 이미지를 양산해내고 있다. 대중문화산업에 등장하는 로맨스는 성적 욕망과 진정한 사랑을 구별하지 않으며, 퇴행적 사랑과 성숙한 사랑을 구분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모든 본능적 욕구의 충분한 만족이 정신적 건강과 행복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그는 성적 억압이 줄어들면 정신질환이 줄어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본능적 욕구의 무한한 추구는 행복의 기초가 아닐 뿐 아니라, 정상적 정신 조차도 보장하지 못한다. 그것은 오늘날의 많은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한편에 성적 만족으로서의 사랑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고독의 피난처로서의 사랑이 있다. 두 가지 사랑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하다.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고 인간이 대도시의 원자적 존재로서 편입됨에 따라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립감은 극심하다. 개인적 고립을 뛰어넘어 외부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세계로 탈출하려는 열망은 극대화되고, 많은 하중이 남녀관계로 쏠린다. 사랑은 일시적으로 고립으로부터의 탈출을 허용해 준다. 급속한 자기 해방,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폭발적으로 퍼붓는 것, 그리고 자아 영역의 급속한 붕괴에 수반되는 고독의 극적인 중단을 맛보기 위해 현대인들은 분투한다.

오늘날 사랑에 대한 찬송가가 널리 울려 퍼지는 것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추구 때문이 아니라, 존재의 절박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다. 사랑은 고립된 개인의 영혼을 구하는 동아줄이 될 수는 있지만, 고립감과 절망감을 유발시키는 모든 사회적 하중을 견딜 만큼 강하지는 않다. 남녀관계에 집중된 사회적 하중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과도하게 높이고, 그것은 친밀성의 과부화, 나아가 친밀성 자체를 붕괴시킨다. 현대인들은 어느 시대 사람들보다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만,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사랑이 위기에 처해있는 여러 사회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인식, 사랑이 퇴행의 길이 아니라 성장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 그를 위해서는 개인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면 희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랑은 즐거움만 준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랑은 고통도 준다. 그 점을 상기할 때 우리는 헤르만 헤세의 다음과 같은 말에 소박하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들이 고뇌와 인종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가를 자신에게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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