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관, 시간도 멈춰 쉬어가는 아산시 제1호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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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관, 시간도 멈춰 쉬어가는 아산시 제1호 목욕탕
  • 김경남 기자
  • 승인 2020.09.01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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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곳에 왔던 게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40년 전 얘기다. 40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젊었을 시절, 명절이 다가오면 새벽 미명 속에서 형과 나를 깨워 앞장세우고 이곳으로 왔다.

명절을 앞두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두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을 찾는 일은 중학교에 입학해 아버지가 아닌 친구들과 목욕탕을 다니기 전까지 의식처럼 계속됐다.

내 어릴 적 기억속의 신정관 물은 뜨거웠다. 단순히 뜨겁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뜨거움이었다 살짝만 담그고 있어도 피부가 새빨갛게 익어 달아오르는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차 숨이 막히고,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옥에 가마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하는, 그런 두려움에 가까운 뜨거움이었다.

형과 나는 때를 불려야 한다고 아버지가 한참을 어르고 달랜 후에야 탕에 들어갔다. 탕에 들어갔다 나온 시간은 1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 그 1분은 긴 고통의 시간이었고, 지옥 가마솥을 견더내는 그만큼의 용기와 각오,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시간은 흘러 세월이 됐고, 세월조차 쌓여 퇴색되어 바래졌고, 바래진 세월만큼 옛 기억도 흐려져 망각되고 있다.

그러나 신정관은 40년의 세월이 비껴간 듯 물은 여전히 발조차 담그기 두려울 정도로  뜨거웠다. 그 뜨거움은 어릴 적 그 뜨거움이었다. 그 뜨거움은 빛바래 퇴색되어 흐릿해진 옛 기억을 일순 선명하게 깨웠다. 신정관의 시간은 40년의 세월동안 멈춰있었다는 듯 깨어난 옛 기억 그 모습 그대로 빛바랜 사진처럼 거기에 있었다.

온양온천에 대한 기록은 백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그 역사가 1300년이 된다. 뜨거운 물이 나온다고 하여 백제시대에는 탕정(湯井)이라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온수군(溫水郡)이라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온창(溫昌), 온천(溫泉)이라 불렸다. 조선 7대 임금 세조는 1458년 온양에서 목욕한 후 이곳을 신정(神井)이라 불렀다.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이 집권해 온천행궁을 수리하고 별장으로 지정했다. 흥선대원군이 죽은 후, 일제강점기에 온천행궁은 일본인에게 들어갔다.

일본인은 온양온천 주식회사를 만들어 온천을 독점해 온천장을 경영하면서 온천을 시굴했다. 1927년에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에서 온천장의 경영권을 계승받아 신정관으로 개칭해 운영했다.

1935년경에 일본인 데구찌가 당시 용출지점에서 동북쪽으로 100m의 가까운 거리인 탕정관에 심도 약150m를 뚫어 온천정을 개발했다. 이 결과 경남철도주식회사 온천수의 용출량이 감소됐다.

경남철도주식회사에서도 신정관 부근(현재온양관광호텔 구내)의 지하를 뚫어 온천정을 개발했다. 일제강점기에 온수광천은 2개소뿐이었지만 무분별한 온천공 시축은 잇따랐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해 해방되고 나서 일본인이 강탈해간 신정관은 회수돼 교통부에서 관리했다. 그러나 6.25전쟁 때 소실됐다. 교통부에서는 불에 탄 신정관 자리에 온양철도호텔을 지어 운영했다. 이후 민간회사에 불하했고, 지금의 온양관광호텔이 됐다.

해방이후 1963년 신천개발공사 대표 이관형이 처음으로 온수광천을 개발했다.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높다는 신천탕이 위치한 자리다. 신천개발공사가 온수광천을 개발한 이후 아산에서는 40여개의 온수광천이 개발됐다.

지금의 신정관은 1953년 온양철도호텔(현 온양관광호텔)을 건축할 당시 함께 지어져 목욕탕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이곳이 일본인들이 신정관을 운영할 당시 온천탕이 있던 자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19671124일 아산시 1호로 목욕장업을 등록했다.

신정관은 개업을 할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운영을 하고 있다. 변한 것이라고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오래돼 낡고 망가진 것을 고쳐 쓰면서 조금씩 바뀌어온 게 전부다.

신정관은 온천물에 찬물을 타 온도를 조절하지 않고 천연 온천물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탕에 온도는 온천물의 온도인 50도 내외다. 온천물에 내공이 있지 않고는 어른들도 선뜻 들어가기 힘든 뜨거움이다. 그러나 수돗물을 전혀 타지 않은 진정한 온천물의 매력은 50도에 가까운 신정관의 온천물에 몸을 담가봐야만 느낄 수 있다.

그대가 60~70년대의 시간 속으로 추억여행을 가보고 싶다면 아산 1호 목욕탕인 신정관에 가보기를 권한다. 60~70년대 그 모습 그대로 그대의 묵은 때를 씻겨내 줄 것이다.

그대가 온천물 그대로의 효능을 느끼고 싶다면 그때도 신정관에 가보기를 권한다. 1300년을 이어오면 아픈 백성들을 어루만져 씻겨 치유해 주고, 임금들의 병까지 고쳐주었던 그 영험한 신정(神井)이 이제는 세상일에 힘들고 지쳐 고단한 그대의 피곤함을 풀어주고 치유해 줄 것이다.

아산에 살면서 온천탕에 가서 온천물을 경험한 이들은 많다. 그러나 수돗물이 섞이지 않은 신정(神井)이라 불린 그 뜨거움을 경험한 이들은 신정관에 가본 이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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