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취사, 백련의 은은한 향기 속에 1000년의 석탑을 품고 1500년의 시간을 이어 온 사찰
상태바
인취사, 백련의 은은한 향기 속에 1000년의 석탑을 품고 1500년의 시간을 이어 온 사찰
  • 김경남 기자
  • 승인 2020.07.29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산에서 21번 국도를 따라 예산으로 가다보면 순천향대학교 못 미쳐 신창면 읍내리 삼거리가 나온다. 읍내리 삼거리에서 오목, 선장방면으로 우회전해서 200m쯤 가다보면 도로 좌측에 인취사 1.6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해서 올라가다 보면 작은 사찰이 나온다. 그 사찰이 인취사다.

신창면 학성산 동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인취사는 신라 법흥왕(514~540) 때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지어졌다고 입증할 자료는 없다. 다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신라 법흥왕 때 지어졌다는 구전 또한 잘못된 얘기다.

신라 법흥왕 시절이라는 얘기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입장이다. 법흥왕 재위기간에 아산은 백제 땅이었다. 신라 법흥왕이 아닌 백제 무령왕(501~523)이나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기고 백제의 부흥을 꾀한 성왕(523~554) 때 지어진 절이라고 해야 맞는 얘기다.

인취사는 조선 후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에는 인취사(咽嘴寺)’라고 나와 있다. 사찰은 정문, 법당과 요사 등 건물 5동으로 구성된 제법 규모가 있는 사찰이었다. 19세기 말에 작성된 호서읍지에는 인취사가 작은 암자로 기록되어 있다. 인취사는 백제 때부터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규모를 갖춘 사찰로 내려왔지만 이후 쇠락해 암자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인취사는 백련으로 유명하다. 백련의 종류 중 <인취사 백련>이 있다. 전국에서 꽃피고 있는 백련 대부분은 인취사에서 시작해 퍼져나간 것이다.

인취사에는 극락전에 안치된 삼존불상과 고려시대 석탑, 범종이 있다.

사진 출처 : 아산시 홈페이지(대웅전 문이 닫혀있어 삼존불상 사진은 아산시 홈페이지에 가져 옴)
사진 출처 : 아산시 홈페이지(대웅전 문이 닫혀있어 삼존불상 이미지는 아산시 홈페이지에 가져 옴)

극락전에 안치된 삼존불상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5호다.

삼존불상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에는 관음보살이 우에는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의 아미타불좌상은 선정인으로서 결과부좌하였으며, 육계가 크고 나발이 선명하고 오른팔에 편삼을 걸친 변형 통견식 법의로서 아미타불의 전형적인 수인과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좌측의 관음보살상은 본존과 같은 착의법을 하였으며, 보관정면에 아미타불좌상의 화불을 조각하여 관세음보살임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우측의 지장보살상은 고려후기에 유행했던 피건을 두른 모습으로서 무릎위에 올려 진 두 손에 보주를 잡고 있다.

삼존불 모두 둥글고 작은 얼굴로서 형태가 비슷한 데 눈, , 입이 작으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모습으로 지방적인 요소가 강한 표졍을 보이고 있다.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조선전기에 제작됐다.

인취사석탑은 삼층석탑 형태로 남아있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5호다.

석탑 기단부는 바닥돌[지대석]로 쓰이는 기단갑석 1매만 남아 있다. 갑석 상단에는 초층 몸돌[옥신]을 놓기 위한 1단의 괴임돌이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의 지붕돌[옥개석]과 몸돌은 모두 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의 높이는 초 층만 높게 하고 2층과 3층은 비슷하다. 초 층부터 3층 몸돌의 너비는 거의 비슷하다. 몸돌의 네 모서리에는 우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면석에 다른 조각은 없다. 지붕돌의 상단부에는 몸돌을 놓기 위한 괴임돌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의 층급 받침은 초 층이 4단이고, 2층과 3층은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돌의 모서리에서 풍탁공은 확인되지 않는다. 낙수면은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3층 지붕돌 위의 상륜부라 할 수 있는 위치에는 우주가 조각된 석물이 하나 놓여 있다. 형태와 위치로 보아 노반으로 판단되나 그 위에는 복발 대신 윗부분이 돌출된 자연석이 올려 져 있다. 석탑의 잔존 높이는 190이다.

인취사석탑은 높이가 190로 잔존된 탑신부가 차지하는 규모이기에 본래의 모습이 아니며, 현재는 삼층석탑 형태이나 과거에는 오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식에 있어서는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인취사 석탑은 인취사가 적어도 고려시대까지 소급되는 오랜 내력을 지닌 사찰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대 백련이 모두 지기 전에, 백련의 은은한 향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인취사에 가보기를 권한다.

1000년의 고탑을 품고, 1500년 전 백제인의 간절한 염원을 간직한 채, 백련의 은은한 향에 취해 잠들어 있는 인취사에서, 운 좋으면 해맑은 웃음의 주지스님에게서 해맑은 향 가득한 백련차 한잔 대접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재자료 참고, 아산시청 홈페이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